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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조'잔혹사'에서 '구원서사'로, 다시 쓰는 인천성모병원지부 이야기
    2022년 겨울호/🏃‍♂️현장이야기 2022. 12. 28. 12:34

     

    [전지적 지부 시점]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인천성모병원을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문장과 만나게 된다. 병원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건네는 구원의 메시지다. 인천성모병원에는 이 문장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돈벌이’에 타락한 병원이 저항하는 노동자를 고립시키고, 노조를 고사시키려 할 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버티어 낸 사람들. 보건의료노조 인천성모병원지부 조합원의 이야기다.

     

     

     김미영 사진 김성헌

     

     

     

     

     

    치유와 돌봄의 대상인 환자가 ‘돈’으로 환산되던 병원 ‘돈벌이 경영’으로 악명 떨치다


    법적으로 우리나라 모든 병원은 비영리기관이다. 의료법은 병원을 만든 이가 재벌 대기업이든, 대학이든, 종교기관이든, 개인이든 그 누구도 영리추구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천성모병원은 과거에 한때 ‘돈벌이 경영’으로 악명을 떨친 적이 있다. 병원의 원래 이름은 ‘성모자애병원’으로 수녀원이 운영했었다. 2005년경영권을 천주교 인천교구로 이관하면서 지금의 인천성모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바뀐 경영진은 병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다. 직원 임금을 4년간 동결하는 대신 직원들에게 길에서 물티슈를 나눠주고 환자를 유치해 오라고 했다. 의료진에 고가 의료장비 검사 건수 할당, 신규환자 소개 할당이 주어졌다. 병원은 환자를 치유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돈‘으로 환산했다. 장경혜 인천성모병원지부 사무장은 그때 병원을 ’공포경영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1명의 직원이 2명의 신규환자에게 3가지 우리 병원 장점을 말하도록 ’123프로젝트‘를 하고, 시험을 봤어요. 비윤리적 경영과 관리자의 과잉 충성이 어우러져 괴기스러울 만큼 이상한 시절이었죠. 직원들에게 겁을 주고 힘으로 누르는,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눈치만 볼 수밖에 없었어요. 천주교 교구가, 신부님이 경영자였지만 악덕기업보다도 끔찍했어요.”


    이런 경영진에 반기를 든 인천성모병원지부는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노조 간부와 조합원에 대한 무차별적인 징계와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 재산가압류를 앞세운 노조 파괴가 이어졌다. 2004년 240명이던 조합원은 2015년 10명으로 줄었다. 존중은 사라지고 무시와 혐오가 가득한 병원이 되어 버렸었다.

     

     

    012
    인천성모병원지부는 병원 정상화, 해고자 복직(홍명옥 지도위원), 노조탄압 철폐를 요구하며 긴 투쟁을 벌였다.

     

     

     

    마음이 여려 차마 동료를 버리지 못했기에 마지막까지 남은 10명의 조합원


    “처절하게 짓밟히면서 10명의 조합원만 남았다고 하면 다들 강단 있는 사람들이겠거니 짐작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마음이 약해서, 동료를 버리기가 괴로워서, 그렇게 심성이 여린 사람들만 남았어요.”


    10명의 조합원 중 1명이었던 황경희 지부장의 말이다. 고 이은주 전 지부장도 그런 사람이었다. 따뜻하고 유쾌하고 요리를좋아하던 엄마와 같던 사람. 부당한 해고로 빈 지부장 자리를 “맏언니가 할게”라며 선뜻 맡았던 사람. 그리고 뒤에서 수많은눈물을 삼켰던 사람. 고 이은주 지부장 비보는 ‘돈벌이 공포 경영’을 주도한 박문서 전 행정부원장의 비리가 세상에 드러나 병원에서 쫓겨나는 날 전해졌다. 천주교 인천교구는 2018년 2월 그의 사제직까지 박탈했다.

     

    고 이은주 지부장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인천성모병원지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병원 정상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무려 12년 만에 노조 가입을 위한 현장 순회가 이뤄졌다. 간호사인 고은미 대의원도 이때 노조 가입 신청서를 내밀었다. “노조 활동을 이유로 집단적으로 괴롭히고, 직원끼리 싸우도록 만들었던 모습을 봤을 때 많이 아팠어요. 저는 승진 같은 거 신경 안 써요. 민주노총 노조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어요.”

     

    ‘공포 경영’ 속에서 직원들은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정의와 연대의 씨앗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경영진교체 이후 노조 가입으로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 9명이던 조합원은 100명으로 늘었다. 이런 가운데 25년 차 간호사 황 지부장이 임원선거를 통해 ‘득표율 100%’ 지지를 받으며 새로운 집행부를 꾸렸다. 그리고 2020년 재선했다. 현재 지부 조합원은 140명이다. 2천300명의 직원에 10%도 안 되는 소수지만, 5년 전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늘었다. 어떤 마음으로 노조에가입했는지 알기에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기에 지킬 수 있었던 가치 ‘돈보다 생명을’


    “경영진 교체 이후 병원 공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과거에 길에서 물티슈를 나눠주며 환자를 유치하고 병원이 공사하면 가서 청소하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죠. 하지만 여전히 인력은 적고 노동강도는 높죠. 병원의 경영수익이 직원 처우에 100% 반영되지 않는 게 현실이죠.”(장경혜 사무장)


    “직원들이 병원이 엄청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다른 병원 노동자들은 대부분 누리고 있던 것을 이제야 누리게 된 것뿐이죠. 근데 병원장이 바뀌어서 그렇다는 ‘시그널’이 우려될 때가 있어요.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한데 좋은 병원으로 바뀔 수 있었던 ‘과정’은 빼고 이야기한 것 같아서요.”(심재민 대의원)


    경영진이 바뀌고 5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복수노조가 생겼고 병원 편에서 노조를 적대시했던 중간관리자, 선임간호사들이 새로 생긴 노조에 대거 가입했다. 인천성모병원지부는 소수노조가 됐다. 황 지부장이 처음 당선했을 때는 조합원 수 1천 명을 목표로 세우고 동분서주했다.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거창한 사업계획은 없어요.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를 지키면서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첫 번째는 우리(집행부)가 지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조금은 내려놓고 가자고 말해요.”


    공포스러운 탄압과 부조리 앞에 꺾이지 않았던 자부심은 인천성모병원지부를 지탱하는 힘이다. 거대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힘이 있기에 괜찮다. 빨리 달리지 않아도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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