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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공공재활의료를 개척하는 국립교통재활병원을 가다
    2019년 가을호/🏃‍♂️현장이야기 2021. 9. 14. 11:16

     

    사고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교통사고도 그렇다. 갓난아기부터 파릇파릇한 청년까지 누구나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사고는 때로 상처를 남긴다. 어떤 이의 상처는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정도로 깊고 깊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국립교통재활병원은 이들을 위한 병원이다. 사고로 손상을 입은 이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31조에 근거해 설립한 국내 유일의 교통사고 전문 재활병원이다.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하루 8시간 집중 재활치료 프로그램
    국립교통재활병원 입원 환자들의 하루는 다른 어떤 병원보다 바쁘다. 오전 9시부터 하루 8시간 집중 재활치료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때문이다. 입원 환자들은 자신을 1:1로 케어하는 치료사와 함께 재활을 위한 각종 치료를 받는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병원 1층에 위치한 운동치료실. 문을 열자 흡사 태릉선수촌 같은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환자복이나 휠체어가 없었다면 이곳이 병원 치료실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다. 뇌 손상이나 척수손상 등 중추신경계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스스로 서거나 걷기 위해 혹은 목을 가누거나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든다.


    운동치료실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면 작업치료실은 유치원에 온 것처럼 아기자기한 분위기다. 작업치료실에는 바느질하는 환자, 부침개를 굽는 환자,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있는 환자, 보드게임을 하는 환자, 구슬로 수를 세는 유아용 교구를 진지하게 만지고 있는 환자 등 다양한 환자들이 자신을 전담하는 치료사와 함께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작업치료는 교통사고 후유장애 환자들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작업치료실에는 다른 병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세탁기, 냉장고, 가스레인지, 변기, 세면대 같은 생활용품들이 치료기구로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스스로 운전하고 집안일을 할 수 있도록
    운전재활장비도 있다. 오락실의 운전게임기처럼 생겼는데 현대자동차에서 소나타 모델을 개조해 장애인을 위해 특별히 만든 장비다. 팔다리가 없거나 교통사고 트라우마로 운전대를 다시 잡기 힘든 사람을 위한 재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층으로 내려가자 복도에서 치료사와 함께 걷고 있는 환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척추가 손상돼 혼자 서 있기도 힘들 정도지만 보행재활로봇을 ‘입고’ 힘들지만 스스로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사람이 의외로 걷는 방법을 쉽게 잊어요. 걷기 기능을 잃은 환자들도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손상된 감각이 돌아오고 치료가 가능해지죠” 김계희 국립교통재활병원 홍보팀장의 말이다.


    수영장처럼 생긴 수(水)치료실에서도 평소 휠체어를 탔던 환자들이 스스로 걷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물속에서도 쓸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휠체어를 타고 천천히 입수한 환자들은 가슴 정도 깊이의 물속에서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일어서서 걷기 시작한다.


    국립교통재활병원에는 다른 병원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입원실이 있다. 재가적응훈련관이라는 이름의 입원실로 병동 밖에 있다. 외관만 보면 2층 양옥집처럼 생겼다. 도어 록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제로 평범한 가정집이 나타난다. 이곳은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같이 입원해야 한다.


    “교통사고 환자보다 사실 보호자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것을 더 두려워해요. 집으로 돌아가면 온전히 보호자가 환자를 감당해야 하니까 겁부터 나는 거죠. 그래서 환자와 보호자 모두 집에서의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적응하는 치료프로그램을 위해 특별히 만든 입원실이에요.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입원실이죠. 처음 만드느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의료법만큼 건설관련 법규도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말이죠”


    김계희 팀장이 상하로 높이가 조절되는 싱크대를 작동시키면서 말했다. 이곳에 입원한 환자들은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생활용품들을 직접 체험하며 어떻게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미래를 설계한다. 국립교통재활병원에만 있는 주간재활프로그램도 이런 취지에서 마련됐다. 입원치료와 외래치료의 장점만 통합한 주간재활프로그램은 아침에 입원해 집중 재활치료를 받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병원에서 사회로 복귀하는 징검다리다.

     

     

    사고보다 잔인한 이름 ‘재활난민’
    국립교통재활병원이 이처럼 집중적인 재활 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는 재활치료에도 골든타임이 있기 때문이다. 김태우 국립교통재활병원 진료부장(재활의학과 교수)은 “모든 치료가 그렇듯 재활치료에도 골든타임이 있는데 조기에 집중적으로 받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며 “급성기 치료를 마무리하자마자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받으면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병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형병원은 수술이 끝나자마자 퇴원을 종용한다. 재활치료는 시간이 걸리는데 돌봐야 할 환자는 너무 많다. 더군다나 재활치료는 돈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조기에 집중 재활치료가 필요한 교통사고 환자들이 엉뚱한 병원에 누워만 있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재활치료 환자는 건강보험 수가(의료서비스의 대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에 제공하는 금액)가 낮고, 장기 환자는 수가를 더 적게 보전받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활병원은 당장 급한 치료가 끝나면 몇 개월 뒤 치료를 중단한다.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이 병원에서 석 달, 저 병원에서 넉 달씩 머물며 떠돌이 입원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재활난민’이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비정상적인 재활치료 시스템을 바로잡는 역할도 맡고 있다. 예컨대 ‘보행재활 로봇’은 일반병원에서 치료용으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격만 수억 원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몸값을 자랑하는데 건강보험 수가는 일반 보행치료 항목에 준하도록 해 치료를 할수록 병원 수익은 마이너스가 된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은 연구용으로 웨어러블 로봇 장비를 도입해 현재 치료목적으로 시험 가동 중이다. 웨어러블 로봇을 재활치료에 상용화하기 전, 의료‧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단계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은 건강보험 사각지대를 메우고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체계를 개발하는 시범사업을 도맡는다. 재활치료 시스템을 민간병원으로 확대하는 정책적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의사-치료사-간호사가 하나 되는 최고의 팀플레이를 향해
    2014년 개원 당시부터 5년간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위탁 운영했던 국립교통재활병원은 2019년 10월 1일부터 서울대병원이 바통을 이어받아 위탁운영에 나선다. 새로 부임한 방문석 병원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재활은 의사가 아닌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며 “의사를 비롯해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가 함께 최적의 치료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고의 재활치료 시설과 장비를 갖췄다는 국립교통재활병원에서 더 눈여겨볼 대목은 치료사가 130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국내 어느 병원보다 많은 수다. 치료사들은 환자들과 1:1로 재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환자와 치료사의 유대관계는 환자에게 재활의 의지를 북돋아 주는 힘이 된다.

     

     

    박승주 국립교통재활병원지부장


    박승주 보건의료노조 국립교통재활병원지부장도 물리치료사다. 그는 “치료사의 숙련은 치료에 중요한 요소인데 건강보험 수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를들면, 1년 차 치료사와 10년 차 치료사의 수가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는 굳이 숙련도가 높은 고년차 치료사를 뽑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가체계는 사람보다 기계에 상대가치 점수를 높이 줘요. 병원들이 너도나도 기계나 설비에 투자하는 이유지요. 기계는 환자와 유대관계를 만들 수 없어요. 재활치료의 정서적 부분을 간과하는 거죠”


    노조는 국립교통재활병원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위탁운영체계를 벗어나 정부 직영체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고용불안과 경영진 교체의 악순환을 끊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 평가 받고 있는 국립교통재활병원이 노조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며 아시아 최고의 재활전문병원으로 도약할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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