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가을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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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짜이 한 잔을 끓여내는 진심의 힘 <사직동, 그 가게>2019년 가을호/🌿문화 2021. 9. 14. 13:37
긴 생명력으로 자리를 지켜온 한옥과 양옥들이 옛 정취로 맞아주는 사직로 중턱, 아담한 마당에 자리잡은 ‘사직동, 그 가게’가 있었다. 한옥 건물 곳곳에 걸린 티베트의 오색깃발과 매듭문양 걸개, 다람살라의 풍경을 그린 벽화가 묘하게 이국적인 분위기로 어우러졌다. 마당을 지나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인도 향신료 볶는 알싸한 냄새가 후각을 사로잡는다. 주방에서 직원과 함께 커리를 만들고 있던 잠양 대표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특별한 커리가 있는 그 가게 2010년 5월 서울 사직동에 문을 연 ‘사직동, 그 가게’는 인도북부 다람살라에 형성된 티베트 난민사회의 경제, 문화적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록빠(ROGPA)’의 지원사업 중 하나로 시작되었다. 잠양 대표는 다람살라 출신의 티베트인으로, 한국인 아내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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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원더>2019년 가을호/🌿문화 2021. 9. 14. 13:34
글 : 이유정 작가 “장애인 아이 나오는 그런 영화 아니야?”라는 내 말에, 먼저 영화를 본 언니는 “니가 생각하는 그런 영화 아니야”라고 했다. 그랬다, 이 영화는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아이의 성장영화이지만, 내가 생각했던 뻔한 신파가 아니었다.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누나, 친구, 누나친구가 매 챕터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크게 감동적이면서도 결코 진부하지 않은 영화였다. 주인공 어기는 안면기형으로 태어나 27번이나 수술을 한 끝에 숨도 쉬고, 말도 하고,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됐지만 얼굴에 남은 수술자국으로 누가 보더라도 수군거리는 외모를 갖게 되었다. 집에만 박혀있던 어기가 올해 드디어 학교에 가게 된다. 어기의 첫 등교날, 어기만큼이나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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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바다에 은하수가 흐르네2019년 가을호/🌿문화 2021. 9. 14. 13:29
글 : 김인숙 작가 설문대 할망의 품으로 비행기 창 너머로 한라산이 보인다. 산꼭대기에 서서 손을 뻗으면 은하수에 닿는다는 산. 고개만 지켜 들면 제주 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산. 해안으로 흘러내리는 자락 여기저기 오름이 솟아 있다. 사실, 태초에 설문대 할망이 있었다. 잠에서 깬 설문대 할망은 바닷속 흙을 퍼 치마폭에 담았다. 한 폭 두 폭 흙을 부려 놓으니 바다 가운데 땅이 생겼는데, 그게 바로 제주다. 이때 치마에 숭숭 뚫린 구멍으로 새어 나온 흙이 오름이 되었고, 마지막 한 무더기 부린 흙은 한라산이 되었다. 제주 사람들에게 설문대 할망은 그저 할머니가 아니다. 땅의 큰 어미, 대모신이다. 원시성이 살아있는 태초의 여신. 하지만 그 신은 절대자의 엄숙함보다는 여느 할머니 같은 친숙함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