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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원더>
    2019년 가을호/🌿문화 2021. 9. 14. 13:34

    글 : 이유정 작가

     

    “장애인 아이 나오는 그런 영화 아니야?”라는 내 말에, 먼저 영화를 본 언니는 “니가 생각하는 그런 영화 아니야”라고 했다. 그랬다, 이 영화는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아이의 성장영화이지만, 내가 생각했던 뻔한 신파가 아니었다.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누나, 친구, 누나친구가 매 챕터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크게 감동적이면서도 결코 진부하지 않은 영화였다.

     

     

    주인공 어기는 안면기형으로 태어나 27번이나 수술을 한 끝에 숨도 쉬고, 말도 하고,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됐지만 얼굴에 남은 수술자국으로 누가 보더라도 수군거리는 외모를 갖게 되었다. 집에만 박혀있던 어기가 올해 드디어 학교에 가게 된다. 어기의 첫 등교날, 어기만큼이나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긴장한다. 그 긴장은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저런 외모의 아이가 학교에 가서 어떤 고난을 당하게 될까 쓰라린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사정이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어가면서 관객들은 어기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어기의 누나 비아의 경우, 4살 이후로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어기에게 전부 빼앗겼다. 그러고도 동생을 사랑했기에 한번도 억울해 하거나 불평한 적 없었는데 요즘은 좀 외롭다. 하나밖에 없는 절친 미란다가 여름방학을 끝내고 머리를 염색하고 오더니 갑자기 쌀쌀맞게 굴며 자신을 거들떠도 안보기 때문이다. 미란다는 갑자기 불량 청소년이 된 걸까? 아니면 비아가 싫어진 걸까? 그렇지 않다. 미란다에게도 자신의 사정이 있다.


    이렇게 어기를 둘러싼 친구들과 누나들의 이야기가 그려지며, 모든 아이들은 제 나름의 힘겨움과 싸우고 있고, 어기라고 별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화목한 가족이 없고, 누군가에게는 돈이 없고, 누군가에게는 형제가 없고, 그리고 어기에게는 평범한 외모가 없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모든 장애인들이 원하는 그것, ‘나를 장애인으로 뭉뚱그리지 말고 나 자신으로 봐 달라’는 요구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시작하고 몇분 간은 어기의 외모에 충격을 받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고, 얼굴보다는 어기가 내뱉는 유머러스한 농담, 어기의 똑똑함과 능청스러움에 매료된다. 그리고 장담컨대, 영화가 끝날 때쯤엔 당신도 어기의 얼굴이 아무렇지 않아질 것이다.

     

     

    어기의 입학식날, 모든 가족이 긴장하고 있다.


    좋은 어른들이 좋은 아이들을 만든다
    어기가 괴물이 아니라 어기 그 자신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좋은 어른들의 역할이 있었다. 어기를 낳고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키운 부모는 물론, 학교에는 도움을 청하라던 선생님과 과학적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과 “아이의 외모를 바꿀 수 없다면 우리의 보는 눈을 바꿔야 된다”고 했던 교장선생님이 있었다. 친구를 도와주라던 잭의 엄마가 있었고, 너를 가장 사랑한다고 했던 비아의 할머니가 있었다. 이런 어른들이 울타리처럼 버티고 있었기에 아이들은 그 안에서 서로 싸우고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어기를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나쁜 사람이 거의 없다. 한 때 나쁜 행동을 했던 아이들도 마음 깊은 곳은 선하다. 유일하게 줄리안의 부모만이 나쁜데, 그들은 어른이라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도 못한다. 포토샵으로 단체 사진에서 어기를 지워버리는 그들의 행위는 “정상적인 우리 애들 사이에 이런 괴물은 없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을 드러낸 혐오다. 줄리안의 부모를 보며 인터넷과 집회와 사회 곳곳에서 대놓고 혐오하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어기가 학교 간 첫날 브라운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택한다면 친절함을 택하라”고 했다. 그 말은 그대로, 졸업식장에서 상을 받은 어기의 내레이션으로 이어진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단죄하는 옳음이 아니라, 누군가를 보아주는 친절이다. 이 착하고 감동적인 영화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고, 어쩌면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한 친구가 가면 새 친구가 온다.

     

     

     

     

    이유정 작가는 시나리오와 드라마를 쓴다. 지은 책으로 《지친 목요일 속마음을 꺼내읽다》, 《우리 같이 살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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