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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 때문에 울고 ‘피’ 때문에 웃는 노동자 -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2022년 여름호/🏃‍♂️현장이야기 2022. 7. 26. 10:07

    [전지적 지부 시점] 대한적십자사에는 6개 적십자병원과 15개 혈액원, 3개 혈액검사센터, 혈장분획센터, 수혈연구원 등 25개 사업장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이 가운데 올해 보건의료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모범지부상을 받은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를 찾아 혈액관리 노동자의 웃음과 눈물을 엿봤다.

     

     

     김미영   사진 김성헌

     

     

     

     

    9.2 노정합의로 이룬 오랜 꿈 ‘주말 저녁은 가족과 함께하는 삶’


    피는 생명이다. 환자를 구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인간의 몸 외에는 구할 수도 없으며 인위적으로도 만들 수도 없는 생명 그 자체가 바로 혈액이다. 그런 피를 다루는 노동자들이 있다. 우리나라 혈액관리 업무 대부분을 맡고 있는 대한적십자 혈액관리본부 노동자가 바로 그들이다. ‘피’ 때문에 웃고 ‘피’ 때문에 우는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조합원을 만났다.


    적십자 혈액관리본부 헌혈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지난 20년간 평일은 물론 주말·공휴일에도 오후 8시까지 일했다. 평일에는 학교·직장 생활 등으로 주말에야 시간이 나는 헌혈자의 발길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기 위해 혈액관리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는 근무방식인 셈이다. 올해로 18년째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한옥미 조합원도 그랬다.

     

    “한 달 연장근로가 50시간이 넘을 정도로 많이 일하죠. 그래도 주말만큼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쉴 수 있는 삶을 바랐어요. 주말이라도 퇴근 시간을 앞당겨 달라 무수히 요구했지만 번번이 좌절됐죠.”


    그런데 지난해 가을 ‘주말 저녁은 가족과 함께’라는 한 조합원의 오랜 꿈이 이뤄졌다. 코로나19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감염병의 터널 속에서 보건의료노동자들이 끝까지 싸워 이뤄낸 9.2 노정합의. 공공의료 강화와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을 골자로 한 합의문 안에는 한 조합원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혈액수급 안정화와 헌혈센터 운영 개선 내용이 부속합의로 담겼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헌혈센터의 토요일, 공휴일 운영시간은 18시까지로 단축(2021년 10월 1일 시행)’. 짧은 한 문장이지만 한 조합원은 그날의 벅찬 감격을 잊지 못한다. “주말 단축근무 합의를 듣고도 믿기지 않았어요. 진짜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연대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적인 합의라고 생각해요.”


    가족과 함께 주말 저녁을 보내는 한 조합원의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숨 돌릴 틈이 생겼다. 틈은 새로운 활력으로 이어졌다. “근무시간이 줄어 삶의 여유가 생기니 더 적극적으로 일하게 됐어요. 헌혈센터가 주말에 2시간 일찍 문을 닫아도 혈액수급에 차질 없도록 더 열심히 일하죠.”

     

     

     

     

     

    코로나19로 유령도시 같았던 대구 우리 가까이에 있었던 ‘헌혈 영웅’


    코로나19는 모든 보건의료 영역에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혈액관리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감염병이 대구를 덮쳤죠. 신천지 사태로 대구는 유령도시가 됐어요. 헌혈자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외부인의 방문을 차단해 헌혈차량이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혈액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정말 위급한 환자에게만 혈액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죠.”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 노동자들은 새로운 헌혈자를 찾아 나섰다. 코로나19 이전 주요 헌혈자인 군인과 학생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헌혈의집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이 있는 아파트로 갔다. 그곳에서 만난 가정주부와 직장인들이 헌혈차량을 반겼다. 어떤 이는 20년 만에 처음 헌혈하며 뿌듯해하고, 어떤 이는 헌혈하고 싶어도 교대근무 때문에 갈 수 없었던 아쉬움을 토로했다. 위기를 이겨내는 힘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다는 명제를 재확인했던 장면이다.


    강귀분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 지부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일상적으로 접하던 헌혈자들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만날 수 없게 되니까 헌혈이 얼마나 고귀한 행위인지 새삼 느껴지더라고요. 혈액은 다른 것과 대체할 수 없기에 더없이 소중해요. 위기가 닥치니까 헌혈자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알게 됐어요. K방역에서 또 다른 주인공은 주저 없이 혈액을 나눠준 ‘헌혈 영웅’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물론 일하며 느끼는 애로도 적지 않다. 헌혈자가 방문하면 먼저 간단한 문진과 혈액검사를 한다. 건강한 혈액만을 공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다. 그런데 10명 중 2명은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다. 좋은 마음으로 헌혈하러 왔는데 거절당했다고 느끼는 일부 사람들은 검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면서 혈액센터 노동자에게 화를 내거나 종종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병원은 내가 불편하고 아파서 오는 곳이지만, 헌혈의집은 건강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잖아요. 드물지만 과격한 민원인도 있어요. 일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게 어려워요.” 33년 차 베테랑 간호사인 강 지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피’ 때문에 예상치 못한 사건은 또 있다. 헌혈자들이 혈액검사 결과 자신이 알고 있던 혈액형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는 순간이다. “과거에는 혈액 검사시약이 부정확하기도 하고 검사 기회도 드물어서 오인한 채로 살아오신 분들이 있지요.”

     

     

     

    사랑과 같은 헌혈, 친구와 같은 노조


    혈액관리본부 노동자들은 전화를 받을 때 “헌혈은 사랑입니다”라고 인사한다. “헌혈은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하는 강 지부장은 올해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에서 요구하는 헌혈 공가제가 합의서에 담긴다면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의 헌혈을 통한 사랑 나눔이 뜨거워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헌혈은 때론 진짜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한 조합원은 “헌혈자는 일단 마음씨가 곱고 좋은 사람들”이라며 헌혈자들이 만나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음을 귀띔했다. 산증인이 바로 한 조합원이다. 헌혈하러 온 ‘마음씨 고운 사람’과 눈을 맞췄는데 어느새 마음이 통했다는 이야기.


    헌혈은 사랑이라 확신하는 조합원들이 모인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는 올해 보건의료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모범지부상을 받았다. 상장에는 ‘지부장과 간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조직력 강화를 이루고 친구와 같은 노조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고 적혀 있다. 친구 같은 노조는 어떤 곳일까. “글쎄요. 저의 몇 안 되는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무조건 날 믿어주고, 공감해주고 비록 해결해 주지는 못해도 정을 나누는 사람인데요. 아마도 조합원들에게 그런 친구와 같은 노조가 되어달라고 상을 주신 게 아닐까요?” 강 지부장이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전임자는 없지만 5년 만에 조합원 수가 배가 된 대구경북적십자혈액원지부의 피, 땀, 눈물 속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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