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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공립 어린이집처럼 신뢰받는 공공병원 만들기 프로젝트
    2019년 가을호/특집🏣공공의료 2021. 9. 14. 11:08

    글 :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아래 글은 보건의료노조가 2019년 11월에 발행한  <건강나눔>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 동네 믿을 만한 병원 하나가 있다면
    가까운 거리에 믿을 만한 병원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 노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슬슬 건강에 자신이 없어지는 중장년층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아플 때 제때 치료받고 건강을 누리고 싶은 원초적인 욕구다. 나와 내 가족에게 응급한 건강상의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믿고 갈 수 있는 ‘실력’ 있고 ‘질’ 좋은 의료기관이 있다면 건강할 권리와 삶의 질은 달라진다. 그 병원이 공공병원인지 민간병원인지의 논란은 치료를 받는 국민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원 하나가 우리 동네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좋은 공공병원에 대한 화두를 꺼내면 “글쎄?”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공공의료에 대한 신뢰는 높지 않다. 같은 공공서비스지만 국공립 어린이집과 비교해 보라. 국공립 어린이집은 그야말로 ‘인기 만점’이다. 등록 전에 대기 시간이 1∼2년은 족히 걸린다.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면 출생신고를 하자마자 사전 등록해야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그렇다. 공공병원에 대한 신뢰나 요구와는 피부로 체감할 만큼 확연히 다르다.

     


    싸고 질 낮은 병원이라는 공공병원에 대한 인식 바로 잡기
    국공립 어린이집과 공공병원에 대한 이런 온도 차는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이는 정부의 정책에 기인한 바도 있다. 사실 그동안 정부의 공공병원 정책은 의료취약지 공백을 막거나, 돈 없는 환자들에 대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해왔다. 그렇다 보니 공공병원은 주로 행려 환자나 돈 없는 환자들이 가는 이른바 ‘싸고 질 낮은 병원’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박힌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의료를 상품처럼 취급하는 의료산업화 논리와 시장주의도 공공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는데 크게 한 몫했다.


    공급을 주도하는 대형 병원들이 휘황찬란한 시설을 갖추고 국민들을 현혹한다. 값비싼 검진과 검사 등을 해대는 ‘고가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았다고 느끼는 착시현상은 이미 뿌리깊다. 그러다 보니 적정 진료보다는 과잉 진료를 하는 병원이 오히려 신경 써서 잘 봐주는 병원이자 좋은 병원으로 인식되어 그렇지 않은 공공병원과 대비돼 온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공공병원은 실제 가진 역량보다 과소평가되고 경쟁에서 밀리고, 세금만 좀먹는(?)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히기 일쑤였다. 2013년의 107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폐업한 진주의료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필수 의료서비스를 위한 보건복지부의 청사진
    최근 보건복지부는 공공의료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재고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국민들이 신뢰하는 제대로 된 공공의료를 만들기 위해 11월 11일,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료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새로운 공공의료체계를 만들어가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가진 이 프로젝트의 핵심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 내가 사는 지역이나 1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②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의료서비스와
    ③ 응급, 심뇌혈관, 모자(母子)와 같이 초기대응이 중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을 위해
    ④ 전국을 17개 권역과 70개 중진료권으로 합리적으로 구분하고
    ③ 중진료권마다 필수의료 진료 역량을 갖춘 의료기관(책임의료기관)을 1개 이상 지정·육성하고
    ④ 함께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지역 단위의 거버넌스와 연계 협력 구조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90% 이상 시장에 맡겨두었던 의료공급을 필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세분된 70여 개의 중진료권에 따라 공공의료기관을 합리적으로 배치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출발점인 셈이다.

     

     

    대도시 병원 안 부러운 탄탄한 지역 병원의 조건
    이러한 계획이 현실이 된다면, 어떤 점이 달라질까?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의 차이가 무엇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보니 실제 환자와 국민들이 체감하는 공공의료의 체계가 어떻게 구축되는 건지 잘 그려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상상력을 동원해 미래를 그려보자.

    ① 최대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최소 300병상 이상(제대로 된 의료서비스 공급을 위한 규모)의 병원이 공적 역할을 하는 종합병원(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운영된다.
    ② 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운영되는 병원은 공공병원이 먼저 그 역할을 하게 되며, 공공병원이 설립되기 어려운 조건이면 지역에서 신뢰가 높고 경영이 투명하게 보장된 병원 중에서 지정된다.
    ③ 이 병원과 함께 수 개의 우수한 지역병원이 상호 연계·협력하는 지역 보건의료체계가 만들어진다.
    ④ 지역 주민이나 시민사회가 책임의료기관과 함께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며 의사 등 보건의료 인력, 필요한 진료과 등이 적절한지를 따져, 확보 방안을 결정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 정책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청사진이 실현되어 탄탄한 지역병원이 생기면, 우리는 국공립 어린이집처럼 믿을만한 공공서비스를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공공의료서비스 확대를 위한 시스템확충과 인력확충
    지역에서 굳이 이름난 병원을 찾아 대도시까지 가지 않아도 믿고 진료받을 수 있는 지역의료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 당장 내년부터 12개 권역, 15개 지역부터 책임의료기관과 지역 보건의료기관 간 응급환자 이송, 퇴원환자 건강관리 등 필수의료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지역협력 활성화’ 모델을 제시했으며, 이러한 지역 내 협력모델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역 책임의료기관에 관련 전담조직으로 공공의료본부를 설치하도록 계획했다. 이를 위한 예산논의도 한창이다. 당장 2020년도 정부 예산으로 지방의료원의 시설 장비 등 현대화를 위한 예산 1천억 원이 배정되어 국회에서 논의 중이며, 이는 불과 2년 전에 비해 두 배로 증액된 금액이다. 더불어 전담조직 설치 예산, 협력사업 예산 등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부족한 9개 중진료권에는 공공의료기관이 새롭게 신축될 예정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 완결적인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역보건의료를 책임지기 어려웠던 취약지역이었던 거창권(합천·함양·거창), 영월권(영월·정선·평창), 상주권(문경·상주), 통영권(고성·거제·통영), 진주권(산청·하동·남해·사천·진주), 동해권(태백·삼척·동해), 의정부권(연천·동두천·양주·의정부), 대전동부권(대덕구·중구·동구), 부산서부권(강서구·사하구·사상구·북구) 등 9개 지역에 지방의료원 및 적십자병원 등 공공병원 신축을 통해 의료자원이 부족한 지역의 공공의료 확충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처럼 지역 보건의료의 토대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공공보건의료 인력 양성이 관건이다. 우리 동네 병원에 좋은 의사 한 명만 있어도 지역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 때문에 공공 의과대학·공중보건 장학제도의 확대를 통해 지역의료 인력 양성을 도모하는 한편, 취약지 간호 인력 인건비 지원을 82개 군(郡) 병원과 58개 군(郡) 종합병원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발표했다.

     


    내가 주인되어 찾고 지키는 건강권
    양질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지역에 따라 건강할 수 있는 권리도 매우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인의 마음으로 살펴야 한다. 서울 강남과 경북 영양군의 치료 가능 사망률은 3.6배가 넘게 차이 난다. 산모가 분만의료기관에 도달하는 시간이 서울은 3분이지만, 전남은 42분에 달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확충과 운영에 관심을 가지고 가지는 만큼이나, 지역 보건의료의 현실에, 공공병원에 애정과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변화는 더디기만 할 것이다.


    지역 보건의료는 국가에서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역의 보건의료정책은 지방정부의 고유한 책임이기도 하며,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질 때 한걸음 크게 나아갈 수 있다. 어쩌면 지역 보건의료구축은 책임의료기관 지정과 같은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의 ‘정책’적 영역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영역의 과제라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일이며, 여기에 직접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다. 직접적인 참여를 위한 지역보건의료 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등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법적 근거도 마련되어 제도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과 힘으로 모두 건강할 권리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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