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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용기
    2019년 가을호/🧘‍♀️인터뷰 2021. 9. 14. 13:21

    지방대 강사 너머, 경계인의 시선을 응시하는 김민섭 작가

     

     

    김민섭 작가

     

    사람은 선 자리가 바뀌면 과거에 느낀 부당함을 쉽게 잊는다. 김민섭은 선 자리가 어디든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작가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며 노동자도 학생도 아닌 자신의 자리를 고민(《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하던 그는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며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하며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대리사회》).


    이 깨달음은 학교, 회사 등을 거치며 각자가 몸에 새긴 ‘훈’을 되돌아보고 ‘대리인간’이 아닌 주체가 되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훈의 시대》). 최근작에서 김민섭 작가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바꾸기 위한 또 다른 키워드로 청년으로 대표되는 ‘경계인’과 ‘연결’을 제시했다(《경계인의 시선》). 그를 만나 청년과 노동조합, 조국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시대 대표적 경계인, 청년
    최근작인 《경계인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제목에 “경계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주로 청년을 경계인으로 호명한 것 같아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 책을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썼는데요. 저 자신을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감각할 수 없는 경계에서, 몸담고 있는 곳의 균열이 잘 보인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경계에 설 때가 있는데 선 위치가 바뀌면 그때 본 걸 금방 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선 위치가 바뀌어도, 사유하는 개인이라면 경계인의 시선을 유지할 수는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요.


    청년 세대가 이 시대의 대표적인 경계인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청년일 때 누구나 부당함이나, 불공정함. 이런 걸 느끼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청년을 너무 오래 경계에 두는 것 아닌가. 거기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을 했어요.


    청년을 경계에 오래 둔다는 이야기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지금처럼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에게 완벽하게 패배한 일은 역사적으로 없지 않았나 생각해요. 30대·40대도 청년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83년생인데도 청년이라고 해요. 민망하고 부끄러워요. 20대가 청년이죠. ‘영포티(Young 40)’, ‘마음만은 청년이다’ 이런 수사를 덧입히면서 기성세대가 청년으로 남고 싶어 하고 청년이 가져야 할 자원을 가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기성세대가 내가 청년이 아니라는 자기규정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다음에 ‘내가 청년이라는 경계를 넘어 온 세대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각할 수 있겠죠.


    청년들이 치고 나가야 한다는 질책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대학에서의 제 경험을 이야기하면, 교수들이 정년퇴직하고 나서도 강의를 해요. 또, 교수들이 방학 중에 월급을 받는데도 계절학기 수업을 해요. 시간강사들은 방학 때 월급이 안 나오기 때문에 계절학기 수업을 하면 생계에 엄청난 도움이 되거든요. 그래도 시간강사들이 교수한테 뭐라고 하기는 힘들어요. 실제로는 ‘교수님 열정에 감탄했어요’, ‘후학 양성을 위해 힘쓰시네요’ 이런 말들을 하게 돼요. 결국 가진 걸 내려놓지 않는 기성세대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해요.

     


    연대보다 연결을 지향하는 청년들의 공동체 감각
    《경계인의 시선》에서 책의 1/3 분량을 대학원생노동조합에 할애하셨어요. 청년을 비롯한 경계인에게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대학에 있을 때 노동조합이 있는지 몰랐어요. 나와서 보니까 있더라고요. 지금은 부끄러워요. 알았다고 하더라도 ‘가입할 용기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또 부끄럽고요. 하지만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믿어요.
    시간강사일 때 ‘누가 내 삶을 바꿔주겠지’ 생각했어요. ‘나는 논문을 잘 쓰면 되고. 사회, 국가, 선배, 교수가 문제를 해결해주겠지’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이젠 알아요. 당사자가 문제를 파악하고 바꾸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노동조합이 청년과 같은 경계인에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경계인의 ‘연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학에 있을 때 선배들이 연대라는 말을 썼어요. 같은 시간에 같은 깃발 아래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는 걸 뜻했죠. 대학을 졸업할 때쯤 아무도 연대라는 말을 쓰지 않았어요. 20세기 학번의 죽은 단어가 아닐까. 연대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연대부터 만들려다 보면 운동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청년들이 연대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대신 연결이라는 말에 더 익숙한 것 같아요.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얇은 끈으로 연결되어 평소에는 모르지만 필요할 때 잡아당기면 협력하는 거죠! 그 끈의 하나가 노동조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도 먼저 그 느슨한 연결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요.


    둘로 갈라진 광장, 세대적 경험을 나눌 때
    책을 보면, 청년 세대를 많이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조국 사태를 대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20대가 조국 사태를 보고 가진 분노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20대를 보고 공정성에 매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정당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면 기꺼이 참여한다. 경쟁 기준의 정의로움과 부당함은 문제 삼지 않는다’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그런 구조를 만든 건 우리들이잖아요. ‘20대의 공정성을 비판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봐야 하지 않나. 기성세대가 미안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너무 염치가 없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본인 세대의 조국 사태에 대한 태도를 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60대는 광화문으로 많이 가셨고, 40~50대는 서초동으로 많이 가신 것 같아요. 제 세대인 30대는 어디로도 잘 안 나갔던 것 같아요. ‘내가 조국이다’라고 말하지도 않고, 조국에게 크게 분노하지도 않고요. ‘그런 태도를 보이는 나의 세대와 몸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대한민국의 어떤 현대사적 사건이 영향을 줬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음에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에요.


    말씀하셨듯이 최근에 광장이 두 개로 갈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서로의 세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IMF와 세월호가 큰 영향을 줬다면, 누구에게는 한국전쟁이 그렇겠죠. 한국전쟁은 이후 세대가 겪은 어떤 경험보다도 엄청난 경험이었을 거예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의 몸에 새겨진 언어는 무엇일까. 이를 이용하는 세력은 누구이고 어떤 의도를 갖고 있나. 이런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각각의 세대가 자신의 기록을 이해해야 해요. 제가 우리 세대의 세대적 기록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도 서로의 세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서였어요.


    이해에는 기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고, 기록과 관련해 평소 ‘추억하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시는데요. 이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많은 사람이 경계에 있을 때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문제를 중심부로 나아가면서 ‘그땐 그랬지’, ‘내가 어렸었지’하는 식으로 추억하게 돼요. 추억하면 자신이 보았던 균열을 외면하고, 다음 세대에게 강요하게 돼요. 그런 추억은 절대 아름답지 않아요.
    대신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해야 해요. 그래야 중심부에 갔을 때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경계에 있는 수만 명이 모여야 바꿀 수 있는 걸 중심부에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바꾸기도 하잖아요.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아픔을 기억하고 기록하면 좋겠어요. 지금의 아픔을 추억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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