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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단 밑이나 오물처리실에서 쉰다? 병원 미화노동자의 ‘쉴 수 없는 쉴 권리’
    2021년 겨울호/🏃‍♂️현장이야기 2021. 12. 10. 18:05

    모 병원 미화노동자 휴게공간

     

    “문이 열려 있으면 쥐가 들락날락 함.”
    “여름에 에어컨이 있었으면 좋겠다.”
    “바닥이 정말 차갑고 눅눅하다. 한겨울에도 난방이 안 된다.”
    “물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오물 묻은 작업복, 세탁소가 필요하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7월 실시한 병원 내 미화노동자 휴게실 실태조사에서 나온 의견들이다. 9개 병원 397명의 미화노동자가 참여해 이루어진 실태조사 결과, 휴게시간에 쉴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다는 응답은 51.9%. 절반이 겨우 넘었다.


    병원 미화노동자 2명 중 1명은 휴게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이들은 어디서 쉴까. 창고(23.2%) 아니면 계단 밑(22.2%)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화장실(8.9%), 복도(9.9%)가 휴게실이 된다. 오물처리실, 병동휴게실, 공원, 반송실, 화물칸 엘리베이터 앞, 청소도구실 같은 응답도 적지 않았다.

     

     

    하루 종일 병원 바닥 쓸고
    의료 폐기물 더미 옆에서 30분 휴식


    하루 1만 명이 넘는 외래환자가 찾는 서울아산병원은 미화노동자만 600명에 달한다. 현대백화점 쇼핑마트까지 병원 안에 있을 정도로 다양한 편의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600명의 미화노동자가 다리 뻗고 쉴 만한 휴게실은 없다. 280명의 미화노동자가 이용하는 신관과 동관 휴게실은 200개의 사물함과 옷걸이 6개, 정수기 6대가 전부다. 탈의실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에어컨도, 심지어 선풍기도 한 대 없다. 내 돈 들여 선풍기만이라도 들여놓고 싶지만 병원 규정이라는 이유로 반입 불가다.


    미화노동자들은 계단 아래 빈 공간이나 화물용 엘리베이터 앞에서 박스를 깔고 겨우 쉰다. 박영진 서울아산병원새봄지부 지부장이 “이렇게 쉰다”며 외래병동 미화노동자들의 휴식공간을 보여줬다. 성인 한 명이 겨우 몸을 구겨 넣을 만한 계단 아래 빈 공간에는 의료용품 폐기물 봉지들과 빈 종이박스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옆으로 난 틈새에 종이박스 한 장이 세로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누군가 잠시 쉬었다 간 흔적이다.

     

     

     

    100명이 쓰는 5평짜리 에어컨 없는 컨테이너
    휴게실 있으나 마나


    휴게실 없는 미화노동자이 가장 힘들 때는 춥거나 더운 날이다. “그나마 건물 내부에 휴게실이 있는 경우는 겨울에 언 몸이라도 녹일 수 있지만 어떤 병원은 후미진 곳에 컨테이너 하나 덜렁 놓고 ‘휴게실’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종일 바깥 공간에서 일할 때에는 딱 30분만 커피 한 잔 마시며 충전하고 싶은데 그럴 공간이 전혀 없어요. 여름엔 에어컨 없는 ‘콩나물시루’ 같은 휴게실에서 30명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 때도 있고요. 그럴 땐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죠.” 박영진 지부장의 말이다.

     

    실제로 고대안암병원은 응급의료센터 옆 컨테이너박스를 여성휴게실로 쓴다. 5평짜리 컨테이너를 100여 명이 이용한다. 미화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병원과 다소 거리가 있는 데다 한 여름에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무덥다. 실태조사에서도 냉·난방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16.1%로 조사됐다. 26.3%는 선풍기로 폭염을 견뎠다. 에어컨이 설치된 휴게실은 49.5%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난방시설 역시 아무 것도 없다는 응답이 17.1%나 됐다. 병원 미화노동자들은 온풍기(22.8%)와 전기 판넬(46.4%)로 추위를 견뎌야 한다.

     

     

    감염 위험에 늘 쫓기지만

    샤워시설 없음 68.4%,
    근무복 세탁시설 없음 85.9%


    병균과 싸워야 하는 병원에서 노동자들은 늘 ‘감염’ 위험에 시달린다. 미화노동자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의료진이 깨끗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그들이 출근하기 전 먼저 나와 이른 새벽부터 온갖 오물을 치운다. 환자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병실과 수술방에서 나오는 각종 의료폐기물들을 다뤄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감염 공포는 더 크다.


    하지만 미화노동자 휴게실에 샤워·세면시설이 없다는 응답은 68.4%나 됐다. 근무복 세탁시설이 없는 경우는 이보다 더 높은 85.9%를 차지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 조무사 등 대부분 직원들은 병원에서 작업복을 세탁해준다. 하지만 용역업체 소속인 미화노동자의 작업복을 세탁해 주는 병원은 거의 없다. 박영진 지부장은 “작업복을 집에서 세탁한다.”며 “미화노동자들도 매일 환자를 접하기 때문에 감염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 늘 집안 식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내년 8월 미화노동자 휴게실 달라질까?
    최소한의 냉난방·편의시설 보장 의무화 시행


    미화노동자들은 내년 8월이면 휴게실이 조금이나마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미화노동자의 휴게공간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것을 의무화한 법령이 내년 8월 18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서울대 기숙사에서 미화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된 이후 23만 명의 국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미화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밥 먹지 않도록 휴게 공간 보장을 의무화 해달라”고 요구한 결과다.


    개정 법령에 따르면 사업주가 휴게시설을 설치하지 않으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최소한의 냉난방과 환기, 편의시설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하청업체가 아니라 청소서비스를 실제로 소비하는 원청업체가 책임지도록 했다. 미화노동자의 ‘쉴 수 있는 쉴 권리’가 보장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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