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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파수꾼 -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지부
    2021년 겨울호/🏃‍♂️현장이야기 2021. 12. 10. 18:29

    한경대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지부 지부장과 간부, 조합원들

     

    환자 대신 심리사회적 약자라고 표현하는 병원, 국내 최초 응급 정신질환을 위한 정신건강위기대응센터를 둔 병원, 전국에서 유일한 공공 응급 정신병원. 병원을 소개하는 한경대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지부 지부장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사실 하나가 있다. 조합원들의 땀과 눈물로 재개원한 병원이라는 점. 문을 닫았던 병원이 다시 문을 열기까지 그 사연을 듣기 위해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지부를 찾았다.

     

    병원 문을 다시 열 수 있었던 힘은 ‘노조’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이야기는 2019년 3월 경기도립정신병원의 폐원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설립한 경기도립정신병원은 36년간 용인병원유지재단 민간위탁으로 운영했다. 그러다 적자를 이유로 사업권이 경기도로 반납됐고 차기 위수탁업체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2019년 3월 폐업 수순에 들어갔다. 하루아침에 환자들과 직원들이 갈 곳을 잃게 된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경기지역본부와 용인병원유지재단지부는 경기도립정신병원 폐업 무효를 선언하고 경기도의회와 경기도를 찾아가 대책을 요구했다. 그해 5월 경기도가 ‘경기도 정신질환자 관리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경기도의회가 ‘경기도립정신병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게 된 결정적 이유다. 폐업 통보 두 달 만에 경기도의료원이 관리 주체를 맡아 ‘새로운 공공 응급정신병원’으로 재개원하기로 가닥이 잡혔지만, 실제 병원 문을 다시 열기까지는 아주 험난했다.

     

    2018년 문을 닫은 뒤 2년 간 비워둔 병원은 재개원에 앞서 새 단장이 필요했다. 그런데 부지를 소유한 용인병원유지재단이 공사를 방해하고 나섰다. 재개원이 코앞인데 재단은 코로나19를 이유로 공사차량과 인부들의 출입을 막거나 산책로를 만든다는 이유로 집채만 한 바위를 진입로에 놓았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공사를 할 수 없게 되자, 한경대 지부장과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직접 공사를 했다. 장판을 깔고 전등을 달고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재단의 눈을 피해 침대도 직접 날랐다. 그렇게 해서 지난 6월 어렵사리 병원 문을 열었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은 노조에서 만든 병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거예요. 폐원 이후에 다른 일터로 떠나지 않고 1년 넘게 재개원을 위해 발로 뛴 조합원들이 있어서 지금 이렇게 환자들을 받을 수 있게 됐죠. 다들 내 병원이라고 생각하고 책임 의식 하나로 버틴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박 트라우마 없는 병원, 그러나…
    그동안 정신병원은 정신질환자들에게 ‘감옥’ 같은 트라우마를 안겼다. 하지만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은 다르다. 급성 정신증상으로 위기에 처한 심리사회적 약자들을 구조해 응급 처치한 후 사회 복귀를 지원한다. 인권을 기반으로 양질의 정신건강 치료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5개월 간 200건에 가까운 응급입원이 이뤄졌는데 82%가 야간 또는 휴일에 진행됐다. 민간병원에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에서 응급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들의 1개월 내 재입원율은 6.9%다. 중증정신질환자의 1개월 내 재입원율 37.9%와 비교하면 5분의 1도 안 된다. 심리적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결박과 강압 대신 진심이 담긴 위로와 이를 통한 안심을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든 상황도 있다. “폭력성향이 심한 탓에 다른 병원들이 입원을 거부해 돌고 돌다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이 많다.”고 설명하는 한경대 지부장은 환자 치료과정에서 다친 조합원들의 상황과 증상을 빼곡히 적은 리스트를 들어 보였다. 

     

    ‘환자가 비누를 먹는 행동을 해 제지하자 치료진 팔을 할퀴고 몸을 밀치는 행동을 함. 2일간 병가/안정실로 안내하는 치료진의 옆구리를 수차례 발로 차 갈비뼈 3대가 부러짐. 전치 4주 진단을 받아 4주간 병가’


    한 달에도 서너 차례 치료진이 환자에게 맞는 일이 일어난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비강압 치료’를 한다. 환자의 신체 강박을 최대한 피하고 점진적으로 안정을 취하게 하는 새로운 치료법이다. 강박과 격리는 정신질환자들이 정신병원에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심하게 폭력 성향을 보이는 환자가 오면 그냥 한 대 맞자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래야 약물 치료든 뭐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간호인력 조무파트에서 일하는 16명의 조합원들은 유독 다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위험을 무릅쓰는 걸까.


    “아무도 안 받아주는 심리적·사회적 약자들이잖아요. 증상이 있지만 이들을 도와줄 곳은 없죠. 우리는 10년 이상 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자 발소리, 눈빛만 봐도 어떻게 대응할지 감이 오지만 부족한 인력 때문에 피로가 누적된 상태이기도 해요.”라며 인력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경대 지부장.

     

     

    한경대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지부 지부장


    환자와 지역사회 연결하는 ‘교량’
    경기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선별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운영 초기에는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음압병동을 정신응급센터 겸 선별진료소로 활용했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치료진들도 이곳으로 파견돼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고립되는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의료활동을 펼쳤다.


    한경대 지부장은 “일반 선별진료소보다 정신질환자 선별진료소가 2~3배는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환자들은 대게 경찰이나 119신고로 들어오는데,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1차적으로 선별한 뒤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오는 만큼 중증 환자들이다. 증상파악이 어렵고 코로나19 노출 경력 역시 정확히 알기 어려운 중증 환자들인 만큼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치료진의 전신 방호복 착용은 필수였다. 하지만 환자들이 방호복을 찢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수원병원에서 운영하던 정신질환자 코로나19 선별진료소는 경기도립정신병원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한경대 지부장은 “시설과 인력이 미흡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걱정이 된다.”고 토로했다.


    정신질환도 하나의 증상으로 이해되길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은 정신질환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교량 같은 곳이다. 한경대 지부장에게 제일 짠한 환자들은 청소년들이다. “집안에서 난폭한 행동을 하면 부모가 경찰에 신고해 이곳으로 데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청소년들이 여기서는 정말 조용하게 지내다 가거든요. 잠깐 의지하고 마음 둘 곳이 필요한 건데 잠깐의 쉼을 제공하는 곳이 사회에는 없죠.” 더 많은 공공의료기관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팔이 아픈 증상처럼 정신질환도 다른 질환처럼 하나의 증상으로 이해한다면 정신질환자들이 다르게 보이지 않고 똑같은 사람으로 보일 거예요. 정신건강이 좋지 않아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때 우리 사회도 건강해질 수 있어요.” 한경대 지부장의 당부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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