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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별 없는 진료, 누구에게나 열린 병원. 전태일 병원을 꿈꾸는 ‘녹색병원’
    2020년 겨울호/🏃‍♂️현장이야기 2021. 9. 14. 10:49

    50년 전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외치며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자기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그의 삶의 마지막 장면 중 하나다. 만약 그 때 돈 15,000원보다 노동자의 아픔을 더 크게 보는 병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훗날 집을 팔아서라도 갚을 터이니 그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리’거나 ‘보증을 받아오라’는 구절은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시 중랑구에 위치한 녹색병원은 2020년 10월 ‘전태일 병원’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노동자와 사회 약자의 아픔을 함께하는 병원, ‘차별 없는 진료’를 실천하는 병원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노동자에 의한, 노동자를 위한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병원

    녹색병원은 과거에도,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병원이다. 녹색병원이 위치한 곳은 원래 YH무역이라는 가발공장이 있던 자리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의 몰락을 부른 여성 노동자의 삶과 투쟁이 있던 공간이다.


    이 병원의 설립자도 따지고 보면 노동자다. 병원은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소유하고 있는데, 1993년 직업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원진’이라는 이름은 나일론을 생산하던 원진레이온에서 나왔다. 때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17살 소년이 온도계공장에서 일하다 수은중독으로 죽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듬해 원 진레이온에서 일했던 노동자 사이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증상이 잇따라 나타났다. 1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집단 직업병 증상을 보이자 1993년 원진레이온은 폐업을 결정했다. 회사의 폐쇄 후 원진레이온 직업병 노동자의 보상기금 관리와 지급을 실행하는 주체로 원진재단이 만들어졌다.


    경기 구리에서 직업병을 치료하기 위한 구리 녹색병원이 만들어지고 2003년 서울 면목동에 300병상 규모로 서울 녹색병원이 설립됐다. 녹색병원은 이제 지역주민과 사회적 약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유일무이한 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추워서 떨고 있는 아들에게 치마를 벗어 덮어주고는 의사에게 갔다.
    의사의 말로는 15,000원짜리 주사 두 대만 맞으면 우선 화기는 가시게 할 수 있다고 하였
    다. 어머니는 훗날 집을 팔아서라도 갚을 터이니 그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매달
    리자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러면 근로감독관에게 가서 보증을 받아오라고 했다.
    분신 소식을 듣고 노동청에서 평화시장으로 급히 파견되었던 근로감독관 한 사람이 병원
    에까지 전태일을 따라와 있었다.”
    <전태일 평전>


     

     

    다른 병원에는 없는 특별한 병실
    녹색병원에는 다른 병원에는 없는 특별한 병실이 있다. 정창욱 녹색병원지부 지부장(전)이 소개한 그곳은 겉보기엔 보통 병실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 병실은 너무나 특별해 보였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쓴, 사상의 은사라 불리는 진보학자 리영희 선생이 지병인 간경화를 앓다가 눈을 감은 곳이 바로 이 병실이다. 불합리한 사회에 맞서기 위해 단식을 하거나 그저 ‘살고 싶다’고 외치기 위해 굴뚝을 오르는 보통의 노동자나 시민들이 사투 끝에 치유와 안식을 찾았던 병실이기도 하다.


    녹색병원에서 ‘인권치유센터’가 들어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병원에 들어가면 환자와 보호자가 접수하는 원무과 창구보다 인권치유센터를 먼저 만나게 된다. 2015년 부터 녹색병원이 인권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인권피해자 진료사업을 2017년 센터로 확장한 것이다. 사회적 약자와 인권피해자를 돕는 인권활동가를 위한 건강지원사업과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클리닉 같은 사업이 더해졌다. 이곳에는 건강보험이 없는 난민들, 성소수자들에게도 활짝 열려있다.


    녹색병원의 인권치유센터의 활동은 ‘인권치유119’가 출범하는 밑바탕이 됐다. 노동자 사회 약자, 소수자, 인권침해 피해자와 현장
    지원 활동가의 신체건강과 심리건강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다. 정창욱 지부장(전)은 “정부가 공공의료를 확충하겠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말뿐이다”며 “공공의료 확충은 공공병원을 새로 짓거나 공공이 기존 병원을 인수하는 방법이 있는데 녹색병원에서 새로운 모델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녹색병원처럼 민간병원에 공공 의료 모델을 이식하는 것이다.

     

     

    “전태일병원 되겠다”
    아픈 사회에 먼저 손 내밀겠다는 선언
    녹색병원은 병실 어느 곳에서도 햇볕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복도에는 환자들이 앉아 쉴 수 있는 시골집 평상 같은 휴게공간이 눈에 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사라졌지만 지난해 여름에는 수박파티가 벌어지기도 했다. 용마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과 채광이 일품인 7층에는 환자들이 제일 많이 찾는 재활센터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있다. 대신 녹색병원의 원장실은 지하 2층, 제일 구석진 곳에 있다. 지난해 3대 원장으로 취임한 임상혁 원장은 “노동자와 지역주민을 위한 민간형 공익병원이지만 우리 같은 병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지금도 여전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많다”며 “아픈 사회에 손을 내밀었던 전태일처럼 우리
    병원도 아픈 사회에 먼저 손을 내밀고 싶다”고 강조했다. 전태일 병원을 자처한 이유다.

     

     

    공공재인 ‘의료’ 지키려면
    수많은 이말년 여사가 필요하다
    정창욱 지부장(전)은 “우리 병원도 그렇고 대부분 병원 노동자는 정규직이지만 우리 병원을 찾는 이들은 대게 비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이들은 녹색병원보다는 대형병원을 찾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 지부장(전)은 “우리 병원은 정부도 미처 손을 쓰지 못하는 사각지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사회가 외면한 이들을 지켜주는 마지막 안전망”이라며 “누군가는 그것을 지켜야 하고, 그 사람이 바로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 이말년 여사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는 2015년 아들인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와 함께 1억 원이 든 봉투를 ‘환자를 위해 써달라’고 건넸다.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 힘든 삶을 지키며 한푼 두푼 모은 돈이었다. 병원은 2008년부터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과 병원의 매칭펀드로 만든 ‘건강방파제’기금과 이말년기금을 더해 의료비 지원사업을 벌였다. 그 돈은 홀로 살던 할머니의 방치될 뻔한 죽음을 막았고, 인생의 고비에서 스스로를 놓으려 했던 50대 남성에게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주었다.


    임상혁 원장은 “사람을 구하는 것은 특별한 의료기술이 아니라 따뜻한 이념”이라고 말했다. 녹색병원은 발전위원회를 만들고 분주하
    게 뛰고 있다. 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한번이라도 더 건넬 수 있도록, 더 많은 병원이 인권과 치유를 치료와 처방에 담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돈이 많든, 적든 누구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건강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
    금 당장도 가능하다.  녹색병원 홈페이지 발전위원회(http://www.greenhospital.co.kr/sub05/sub04.php)에서 그 길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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