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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일이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 - 애니메이션 <태일이>의 홍준표 감독
    2021년 겨울호/🧘‍♀️인터뷰 2021. 12. 16. 17:18

     

    애니메이션 <태일이>의 홍준표 감독

    태일이, 우리 태일이라고 다정하게 이름이 불리자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며 분신한 열사가 평범한 스무 살 청년으로 돌아간다. 애니메이션 <태일이>의 홍준표 감독은 ‘전태일’이 특수한 시대와 장소에 속한 특정인물이 아니라 어디나 있는 누구나 될 수 있는 보편적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웃을 때가 멋있는 패셔니스타였다고, 오랜 시간을 두고 사귄 절친 이야기를 하듯 전태일을 이야기한다. 편견 없고 애정 어린 감독의 시선이 열사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뜨리고 따뜻하고 정감 있는 사람 태일이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평화시장을 수차례 오가면서 자료조사를 하고 직접 세트장을 지으면서 당시 노동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낸 평화시장의 봉제노동자들을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패셔니스타인 태일이는 어떤가요?
    홍준표 감독은 작업 내내 전태일 열사를 ‘태일이’라고 불렀다.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한 모두가 그렇게 했다. “여기서 태일이가 파카를 입었던가?”, “아니, 태일이 긴팔 입었어.”, “태일이 이 장면에서 인상 써야 되는데, 행복한 표정이야.”라는 식이었다.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태일이’였다. 그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고 이후로도 이견이 없이 끝까지 ‘태일이’였다. 홍 감독은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분신을 먼저 떠올린다며 <태일이>를 보고 나면 이제는 다른 단어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어쩌면 ‘이제 전태일하면 패셔니스타’를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른다며 미소를 지었다. 홍 감독은 <태일이>를 통해 ‘열사’라는 이미지에 갇힌 전태일을 살아있는 인물 태일이로 끄집어냈다.

     

    “전태일은 재단사예요. 평화시장에서 오랫동안 옷을 만들던 테일러죠. 저는 태일이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옷을 되게 잘 입었고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에서도 매 씬마다 옷을 중요하게 다뤘어요. 태일이 의상에 꽤 신경을 썼죠. 그가 댄디한 청년이었다는 것도 분명 태일이의 한 부분입니다. 봉제공장에서 일했다고 해서 마냥 꾀죄죄하고 힘든 모습이었을까요?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는다면 분명 태일이의 다양한 면모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홍 감독은 태일이와 친해지기 위해 태일이가 쓴 메모와 일기를 많이 읽었다. 봉제 노동자라고 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고 해서 무지했을 것이라 여긴다면 오산이다. 태일이는 노동과 인권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철학적 인물이기도 했다. 남성이었고, 재단사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교적 안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동료 여공들의 처지를 먼저 챙긴 따뜻하고 이타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전태일을 태일이라고 부르는 동안 홍 감독은 태일이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새 태일이는 곁에 있는 동생처럼 친근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전태일과 닮지 않은 태일이의 얼굴
    제일 고민했던 건 캐릭터 디자인이었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면 캐릭터 디자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겠지만 전태일은 실존인물이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자신의 생을 바친 상징적인 인물이어서 고민이 되었다. 실제 모습 그대로 그려야 되는 게 아닌지, 적어도 비슷하게라도 그려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누가 봐도 이건 전태일’ 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게도 그려봤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태일이>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니까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얼굴로 디자인을 하는 게 더 우선이었다.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점을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니, 애니메이션 속의 태일이가 실존인물 전태일 열사와 똑같을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열사의 실제모습과 얼굴을 닮게 그려야 된다는 부담에서 벗어났다.


    공간이나 소품 같은 배경 이미지는 자료조사를 통해 최대한 당시와 똑같이 재현했다. 평화시장과 전시관, 청계공장, 박물관을 다니며 실제와 닮은 봉제공장 세트를 직접 제작했다. 조명까지 밝혀보면서 당시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다만 같은 공간이더라도 느껴지는 분위기는 달리 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현실의 모습을 재현했지만 노동자들이 모여 있을 때는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도록 공장의 분위기를 가공했다. 실제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공간의 이미지를 대체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게 홍 감독은 재봉틀 앞에 앉아 잠깐 허리 펼 틈도 없이 바빠 돌아가는 공장의 척박한 일상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며 만든 영화
    첫 장편 애니메이션 <태일이>. 혼자는 불가능해보이던 것이 여럿이 하니 가능했다며 홍 감독은 함께 작업한 팀원들에 감사를 잊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제작팀이 이뤄낸 업적은 <태일이>라는 작품 자체의 성과도 있지만 제작 과정에서 도전한 과제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근로기준법을 100% 지킨 것. 영화작업을 시작하면서 함께 약속한 계획이었는데 결국 끝까지 해냈다.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체휴가와 수당을 지급하면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노동을 했다. 그래서 정작 홍 감독 본인이 쉬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돌아왔지만 결정권이 있는 누군가가 더 고생하는 게 전체적으로 보면 더 낫지 않느냐고 묻는 홍 감독의 모습에서 얼핏 태일이가 지나갔다.

     

    <태일이>는 장동윤, 염혜한, 진선규, 권해효, 박철민 같은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기대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자칫 잘못하면 그림이 앞서고 목소리가 묻히거나 반대로 목소리가 앞서고 그림이 안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홍 감독은 이 두 가지 요소의 조화를 위해 공을 들였다. 먼저 목소리 연기를 녹음해 배우들의 목소리와 연기 톤에 맞춰 그림 작업을 했다. 그렇게 충분히 배우의 목소리에 맞춰진 그림에 배우들이 다시 녹음을 한 것. 배우들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에 깊이 감정이입을 했다. 목소리 연기를 하다가 어떤 장면에서는 너무 답답해하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는 펑펑 울기도 하며 직접 태일이가 되고, 영미가 되었다. 감정적으로 깊이 공감하며 인물들에게 가까이 갔다.

     

     

    동고동락하며 함께 작업한 팀원들. 홍준표 감독은 인터뷰 내내 팀원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어디에나 있는 누구나가 바로 태일이
    홍 감독은 전태일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을 한 영웅이 아니라 사실 누구나 어딘가에서는 한번쯤 태일이였다고 말한다. 기본적인 상식을 지키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태일이라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걸 침묵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면 그가 태일이라고, 자기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먼저 챙겼다면 그 사람이 바로 태일이라고 했다.


    어디에나 있는 누구나가 모두 다 전태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홍 감독이 ‘태일이’가 되는 순간은, 횡단보도 무단횡단을 목격할 때다.

     

     “대단한 것이 아니고 사소한 거예요. 그걸 우리는 상식이라고 말하잖아요. 함께 살고자 만들어 놓은 질서를 안 지키는 순간 누군가는 이익을 보겠지만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돼요. 상식을 지키고, 그걸 어겼을 때 잘못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태일이가 살던 평화시장, 그때도 그랬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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