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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수상] 숭배도 혐오도 아닌 내 몸 이해하기
    보건의료노조 성평등 독후감📖 2022. 1. 11. 15:16

    [우수상] 숭배도 혐오도 아닌 내 몸 이해하기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독후감)

     

    - 이현주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제목에 끌려 책을 펼치다 차례 페이지에 여성의 몸을 조목조목 짚어 놓은 것을 보며 묘한 전율을 느꼈다. 이제까지 내가 경험한 여성의 건강에 관한 의학서나 간호학 전공서는 임신과 출산 위주로만 기술되어 있었고, 대학 전공과목인 모성간호학에서도 생식기, 임신, 분만의 형태로 이루어졌었다. 의학 자체가 남성 중심적으로 발달해왔기 때문에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신체를 기술한 다음, 생식기 부분에서만 여성의 몸이 나오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남성 몸을 기준으로 여성 몸이 어떻게 다른지를 기술하지 않고 여성 신체를 주체적으로 촘촘히 표현하면서, 젠더고정관념과 성차별주의가 얼마나 작동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생리’의 주제를 보면서 세계 35개 나라에서 출간 한 <질의 응답>의 저자 엘렌 스퇴겐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여성들의 인상에 대해 인터뷰한 기사가 떠올라 검색해보았다. 한국의 첫인상에 대해 보수적인 나라 같아서 여성들이 살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한국 여성들은 병원에서 의사와 성에 대해 편하게 말하기 어려운 환경이고,

    자신의 성기를 정확한 명칭으로 부르는 대신 ‘거기’, ‘그곳’, ‘아래’ 같은 대명사로 부르는 것에 익숙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생리 중일 때도 ‘그날’이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여러 생리용품 가운데 질에 삽입하는 형태의 탐폰, 생리컵 등이 외국에선 활발히 사용되는데 한국에선 주로 생리대를 사용하는데 그이유가 여성의 처녀성과 질막(처녀막)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나라에서 어린 여성에게 생리컵과 탐폰 사용을 지양하도록 가르치는 경향 때문인 것 같다고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 조차도 ‘생리’ 라는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혐오 내지,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하는 단어 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특히 생리에 관하여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면 4명의 자매와 엄마까지 여자 가 다섯 명 이다보니 항상 누군간 생리 중이었고, 급히 남동생에게 생리대 심부름을 시킬라 치면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그 당시 생리통으로 힘들어 하는 동생에게 할머니는 “달거리 하는 게 뭔 대수라고 쯧쯧쯧. . . ”하시며 못마땅해 하셔서 아프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했던 것 같다.

     

    여성은 평생 살면서 약 5.5년간 피를 흘리며 보낸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닷새씩 생리를 한다고 가정하면 67개월 동안 피를 흘린다고 하니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할머니의 ‘무슨 대수 라고! ’ 호통쳤던 그 생리가 평생의 대수 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상적인 “생리적인 ”반응이다.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제요건 임에도 불구하고 옛 사람들은 여성의 생리란 재수 없고 부정타는 것으로 치부했던 것 같다. 이렇게 여성이 평생 경험하는 생리에 대하여 여성 스스로도 잘 모르고 이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몇 해전 생리대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검출되었다고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생리대의 다양한 상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간호사인 나조차도 ‘생리컵’이라는 제품에 대해서 그 때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무지하고 그동안 나 스스로도 생리적인 반응을 혐오의 측으로 생각하고 은밀한 부분으로 여겼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 책 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생리에 대한 평균과 표준의 데이터도 없다보니 무월경이나 생리주기 이상 , 생리통과 같은 문제를 경험하는 여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건강한 대안들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일인 것 같다. 심지어 여성을 포함한 남성 모두가 생리 그 자체에 대한 이해와 교육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병원 교대 근무, 특히 밤근무와 불규칙적인 근무형태로 인해 동료, 후배 간호사들이 생리 이상 현상, 자연유산 으로 힘들어 하고 있고, 반도체 사업장의 여성노동자들에게도 월경부전 이나 자연 유산발생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건강문제의 구체적인 원인을 해명하거나 산재를 입증하기가 어려운 현실이어서 더 안타깝다.

     

    생리는 매우 보편적인 생리현상이지만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여성들의 불편함이나 문제들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스트레스와 위험요인들이 생리에 그대로 반영되어 심각한 건강위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여성의 경험들은 중요한 보건문제로 주목받지 못하고 소소한 것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남성 몸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육, 사고, 의학적 접근 등 총체적으로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과연 이해와 교육, 주목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과 남성들이 생리를 한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게 된다.

     

    휘발성 유기화합물검출 생리대, 반도체 노동자들의 생리이상 문제 등 안타까운 일이였지만 그러한 사건들이 생리를 더 이상 은밀하고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인 의제로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우리 여성의 피 값이 당당히 사회적 의제와 보건분야의 주요의제로 다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몸의 많은 부분을 보듬지 못하고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이제껏 살아온 것 같다. 내 몸을 끔찍이도 숨 막히게 하고 대상화 하며 살아온 것 같다. 이제는 벗어나서 자유로워 져야겠다. 당장 나의 몸을 조이는 보정속옷을 벗어버린다고 해서 당장 변화되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기존규범에서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겠다.

     

    모든 것에 문제의식을 갖는다고 바로 실천 할수 없지만 그래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찾았으니 천천히 가더라도 뒤로 가지는 않아야 겠다.  먼저 나의 몸을 잘 알고 이해해서 젠더고정관념과 성차별주의로 구분하고 규율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법과 제도 영역에서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함께 연대할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2021년  <여성의 몸과 건강불평등> 을 주제로 성평등 독후감 대회를 열었습니다. 수상작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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