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우리에겐 단 2초의 여유가 절실해요” 보건복지공무직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지회
    2021년 여름호/🧘‍♀️인터뷰 2021. 8. 6. 17:40

     

    의료정책에서부터 위기대응까지 129번과 1393번으로 걸려오는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보건복지상담센터. 보건의료노조 보건복지공무직지부에 속한 지회이기도 한 이곳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은 어떤 노동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양주희 보건복지부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지회 지회장과 조합원들

    129·1393번으로 걸려오는 전화
    의료정책에서 자살예방까지 상담
    사락사락, 소곤소곤. ‘소리’로 묘사하자면, 이곳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낮은 목소리 두 가지면 충분하다. 우리나라 보건의료·복지 정책과 관련한 모든 것을 상담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복지상담센터. 전국 어디서나 129번으로 전화를 하면 의료정책이나 공공보건정책, 의료급여와 자활사업을 비롯한 복지정책과 출산·보육정책에 대해 무엇이든지 물어볼 수 있다. 1393번은 자살충동을 느끼거나, 학대로 고통받는 이들이 24시간 365일 전화를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 코로나19 예방접종 예약이나 4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한 상담업무도 보건복지상담센터가 맡고 있다.


    상담사들이 작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소리 말고도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많은 이유는 보건의료·복지 정책과 관련한 수많은 규정을 법령집과 지침서를 일일이 찾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양주희 보건복지공무직지부 보건복지상담센터지회장은 올해 16년차 상담사다.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사업 대부분을 저희가 상담해요. 지자체 공무원분이나 다른 부처 공무원들도 주로 저희에게 문의한답니다.”

     

     

     

    코로나19로 확 늘어난 업무 “하루하루가 전쟁”
    코로나19는 국가의 보건의료·복지 정책을 처음부터 다시 쓸 것을 요구할 정도로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 정책과 국민이 만나는 접점에 있는 보건복지상담센터 상담사들은 이런 변화를 뼛속까지 체감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지침도 달라지기 때문에 매일매일 숙지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나 많다.


    아침 8시 15분쯤 사무실에 도착하는 양 지회장은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켜고 상담시스템에 로그인한다. 그리고 텀블러를 씻은 다음 업무 공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보건의료·복지 정책은 그 내용이 방대하면서도 자주 바뀐다. 특히 코로나19 관련 지침들은 하룻밤 사이 달라져 있을 때도 많다. 규정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 익혀야 하는 수많은 업무가 상담사의 어깨를 짓누른다.


    “요즘 상담사들이 모이면 ‘우리 업무는 다 까먹었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해요. 업무 80%가 코로나19 관련된 상담이거든요. 모두 5개 팀이 있는데 보건의료팀에서만 코로나19 업무를 전담할 수가 없어요. 모든 팀이 공통적으로 응대하고 있죠. 지금은 60~74세 예방접종 사전예약 전화 상담이 많아요. 30세 미만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대상자 중 사회필수인력, 보건의료 인력 사전예약 업무도 전체 팀에서 담당해요.”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코로나 블루’ 매일 벼랑 위를 걷는 상담사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것은 업무 내용과 범위만이 아니다.

     

    “아무래도 코로나19가 너무 장기화되다 보니 삶이 힘든 분들이 정말 많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이야기하거나 우울감을 호소하면서 고성이나 욕설, 반말, 비하, 협박하는 경우가 늘었어요.”


    깊은 한 숨을 내쉬는 양 지회장. 재난지원금이나 코로나19 예방접종 예약 업무가 늘어 전화 연결 대기시간도 길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통화가 되면 장시간 이야기하거나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양 지회장은 “저희 업무와는 무관한 민원을 하거나,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마구 이야기하기도 한다.”며 “상담사들이 정신적으로 지치고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상담사들이 쉬는 휴게실마저 코로나19로 폐쇄됐다. 오전과 오후 10분 내지 20분가량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는 복도를 서성이는 것이 휴식의 전부다. 특히 위기대응상담팀은 강도 높은 정신노동에 시달린다.


    “감정적으로 코너에 몰려있는 사람들, 정말 우울감이 심한 이들, 학대당하는 사람들의 상담 전화를 받는 곳이 위기대응상담팀이에요. 강도 높은 정신노동으로 지난해 위기대응상담팀에서 처음으로 외부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었죠.”

     

     

    양 지회장은 외부 심리치료를 전 상담사에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석하 보건복지상담센터장도 상담사의 이런 어려움을 알고 있다. 그는 “상담사 인력 충원과 감정노동자를 위한 힐링 프로그램, 근무환경 개선과 복지향상을 위한 제반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한 만큼 대우받고 싶다”
    16년 경력 상담사도, 신입 상담사도 같은 임금
    이처럼 고된 업무를 버티게 하는 건 자부심이다. 보건복지상담센터 상담사로 제 몫을 하려면 2년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신입들은 교육만 3개월을 한다. 상담에 투입되기 전 익혀야 할 기본 업무가 많기 때문이다.


    “저희 주 고객층은 일반 국민 외에도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이 많아요. 지침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잖아요. 지침에 나오지 않는 사례들을 묻고 지침에 없는 답을 원할 때도 많죠. 저희는 상담사예요. 업무 범위에 법령이나 지침을 해석할 권한은 없죠. 담당 공무원들이 해야 하는데 사업과에 있는 공무원들은 늘 바빠요. 사람들은 말해요. ‘너희가 보건복지부다, 너희가 답을 안 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상담사는 보건복지부가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 공무직이다. 업무를 할 때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처럼 하길 원하면서, 처우는 ‘콜센터 상담사’ 기준을 들이민다.

     

    매년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인 공무원과 달리 직무급제를 적용한다. 공무원처럼 공무직도 가족이 있지만 가족수당은 공무원에게만 준다. 똑같은 명절을 보내도 공무원은 기본급 대비 60%의 명절수당을 주고 공무직은 정액 40만 원만을 지급한다.


    “16년 일한 상담사와 갓 들어온 상담사가 기본급이 동일해요. 지식이나 숙련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죠. 똑같은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직인데도 질병관리청이나 국립재활원은 호봉제를 적용해 저희보다 임금 수준이 높아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보건복지상담센터 상담사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건 ‘2초의 여유’다. 상담이 끝나고 다음 상담 전화를 받기 전까지 1초의 여유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숨 한번 못 쉬고 다음 전화를 받아야 한다. 전화기에서는 코로나19의 참혹한 현실이, 견디기 어려운 마음의 고통이,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국가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가 쉬지 않고 전해진다. 양 지회장은 “단 2초만 있어도 정말 큰 여유를 준다”고 말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